2011년 12월 31일,
공원에서 비를 기다리는
영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박영호(강하늘)
그제는 112년 만에 사막에 눈이 왔다고 한다.
어제는 남극에 비가 와서 많은 펭귄이 죽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 가능성이 낮은 무언가를 생각중이다.
학창시절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겠다.
어렸을땐, 하나님이 울면 비가 내리는줄 알았다.
그 유치한 생각이 6학년때까지 이어졌다.
이건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12월 31일, 나는 지금 비를 기다린다.
가능성이 매우 낮은.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하나님이 울면
비가 내리는 줄 알았던 영호(강하늘)와
어린 시절, 하늘이 지치면
비가 내리는 줄 알았던 소희(천우희)의 이야기다.
초반 영화는,
두 주인공 영호와 소희의
8년 전 삶을 비춰준다.
뚜렷한 목표없는 삼수생 영호,
가죽공방을 운영하는 영호의 아버지,
엘리트 명문대 졸업생 영호의 형을.
그리고
함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소희와 엄마,
기관절개로 말을 할 수 없는 아픈 언니 소연을.
분명한 목표와 꿈이 없는 삼수생 영호는
먼 어린시절,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 시합 중 넘어져 다쳤을 때
그 때, 학교 수돗가에서 네잎클로버가 수놓아진
하얀 손수건을 건네준 소연의 주소를 알아내
무작정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소연은 영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언니 소연을 대신해 편지를 쓰는 소희는
영호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하다며
몇가지 규칙만 지켜줄 것을 당부하는 답장을 보낸다.
질문하기 없기, 만나자고 하기 없기,
그리고 찾아오지 않기.
꿈도 목표도 없는 삼수생 영호와
새로울 것 없는 현실에 순응하는 소희의
지루한 일상에 찾아든 생기
편지주고받기는 그렇게 시작이 되고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던
영호와 소연(소희)은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고
약속하게 된다.
영호의 작은 기다림은
달리 표현해, 영호의 기다림의 인내는
달아나던 기적을 붙들어세웠다.
살아볼수록 거칠기만 한 세상살이에
보통사람의 소소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기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는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편지지, 빨간 우체통, 오래된 LP판, 헌 책방
아련히 몽글몽글 옛시절 추억이 저절로 소환되는
영화속 소품이 잔잔한 스토리와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가능하다.
끝으로,
눈물나게 하는 영호의 대사를 옮기며
포스팅을 마무리 한다. 끝.
박영호(강하늘)
친구야, 이제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거 같애.
가끔은 억울한 생각도 들어.
내 20대 시절이 온통 알 수 없는 기다림으로 가득했으니 말이야.
난 지금 우산장수가 됐어.
생각해보면, 내 20대는 우산과 비슷한 거 같아.
매번 잃어버리고 녹슬고 끊어지고 없어지고.
생긴것도 마냥 똑같고.
그래도 잊지못할 시절이었어.
고마웠어. 정말. 정말.
만나면 할 얘기가 많았는데 끝내 만나지 못한다.
보고싶은 나의 친구, 안녕.
이 거리를 걸을때면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내 삶의 기적은 이미 지나쳐간건 아닌지
혹은 나 따위에겐 그런 영광은 끝내 오지 않는건지
그리고 또 생각해본다.
나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지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일들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이건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그저 작은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종종 우리를 스쳤던 희망, 꿈, 사랑 그리고 낡고 오래된 것들.
그렇게 떠나버린 것에 관한 이야기다.
공소희(천우희)
어렸을 땐, 하늘이 지치면 비가 온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함께 있자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 유치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박영호(강하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누군가는 이 겨울비가 기적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저 따뜻한 겨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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