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보리밭 끝
해 질 무렵 두물머리 보리밭 끝에는
바라볼 때마다 추억까지 황홀해지는 노을이 있고
아무렇게나 건네주어도 허공에 길이 되는
가난한 시절의 휘파람 소리가 있고
녹슨 십자가를 매단 채 빨갛게 사위어가는
서쪽 마을 교회당 지붕들마저 저물어 있다
나는 자주 그 길 끝에서 다정한 생각들을 불러 모으고
구름은 기꺼이 하루의 마지막 한때를
내 가벼워진 이마 위에 내려놓고 지나갔다
언제나 나는 그 보리밭 끝에 남겨졌지만
해 질 무렵 잠깐씩 잔잔해지는 저녁 물살을 바라보며
생애의 마지막 하루처럼 평화로웠다
쓸쓸한 시절은
진실로 혼자일 땐 동행하지 않는 법이었다
바람의 길을 따라 보리밭이 저희의 몸매를 만들 때
나는 길 끝에 서서 휘파람 뒤에 새겨진 길을
천천히 따라가거나 물소리보다 먼
세월을 바라보았을 뿐
거기선 오히려 아무것도 그립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립지 않는 사람으로 느리게 저물어서
비로소 내 눈물은 스스로 따스한 뉘우침이 되고
물소리는 점점 더 잔잔한 평화가 되고
서쪽으로 불어가는 생각들과 함께 나는
노을보다 깊어진 눈시울로 길 끝에 서서
아직 잊혀지지 않은 것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생애의 마지막 하루처럼
두물머리 보리밭 끝에 날이 저물 때
멀리 가는 물소리와 함께
어디로든 한꺼번에 저물고 싶었다 아무것도
그립지 않았다
상처적 체질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 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길
여섯 살 눈 내린 아침
개울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늙은 개 한 마리
얼음장 앞에 공손히 귀를 베고 누워
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소리를 견뎠을
저문 눈빛의 멀고 고요한 허공
사나흘 꿈쩍도 않고
물 한 모금 축이지 않고 혼자 앓다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개울가로 걸어간
개 발자국의 선명한 궤적이
지금껏 내 기억의 눈밭에 길을 새긴다
황사
사막도 제 몸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너무 오래 버려진 그리움 따위
버리고 싶은 것이다
꽃 피고 비 내리는 세상 쪽으로
날아가 한꺼번에 봄날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사막을 떠나 마침내 낙타처럼 떠도는
내 고단한 눈시울에
흐린 이마에
참았던 눈물 한 방울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極地 극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거의 언제나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존재였다
내가 미처 준비하기 전에
결별의 1초 후를 예비하기 전에
다들 떠나버렸다
사람을 만나면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떠나지 않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가야 할 사람들은 늘 먼저 일어서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잘 참아주었다
그러나 마침내 술자리가 끝났을 때
결국 취한 나를 데리고 어느 바닥에든 데려가
잠재우고 있는 것은 나였다
더 갈 데 없는 혼자였다
탐색
거울 속에 낯선 사내의 얼굴이 자주 나타난다
선이 분명하지 않은 주름과
중심에서 벗어나 윤곽을 놓쳐버린 눈동자
중얼거리다 들킨 것처럼 가지런하지 못한 입술은
그가 세상을 얼마나 모질게 달려왔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거절에 겁먹어 있는 사람인가를
잘 보여준다
나약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턱을 잡아당기고 눈을 치켜뜬 채
재빨리 안으로 도사리곤 했던 버릇은
눈썹과 눈썹 사이에 숨길 수 없는 바코드를 새긴다
종이배를 펼쳐서 다시 비행기를 접은 것처럼
일부러 힘을 가장한 눈매는 결국 그 불안을 들킨다
가늘고 긴 목을 지탱하면서도 과장되게 굽어진 어깨는
그가 실은 처음부터 세상에 맡설 만한 용기도
무기도 없었던 사람이란 것을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깊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말만을 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그의 입술은 혼잣말에 길들여져 속으로만 뾰족한 입술을
한 개 더 깨물고 있다 지구가 도는 소리와
바람이 불어가는 소리는 다른 것이다
대질심문하는 초범의 피의자처럼
한눈에 모든 것을 들켜버리는 저 사내
나타날 때마다 새롭게 낯설어져서
왼쪽과 오른쪽을 잃어버린 채 주춤거리다가
손에 들었던 칫솔을 안주머니에 꽂은 채 갸우뚱 사라지는
발소리 어쩐지 너무나 익숙해서
들킨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내 하나
황급히 거울을 빠져나오고 있다
시인 류근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나 18년간 공식적인 작품 발표를 하지 않았다.
시집 <상처적 체질>과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등을 출간했다.
류근 시인의 말
진정한 지옥은 내가 이 별에 왔는데 약속한 사람이 끝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감성마을 慕月堂에서 류근 -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직 아픈 사람이 있어 내 청단풍잎 같은 손바닥으로 그의 이마를 짚어줄 수 있으면 좋으리. 문득 겨울을 맞은 나무처럼 삶의 지붕이 쓰라린 사람일 때엔 낮은 데서 빛나는 종소리 한 줌의 무게로 다가가 그의 가슴을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으리. 조금은 가난하고 조금은 깊어진 음성으로 먼 눈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으리. 손금이 마주치는 순간의 평화와 안식을 얹어줄 수 있으면 좋으리. 그러나 아아, 그 아프고 쓰라린 사람이 영원히 나여서 단 하루라도 돌아가 그의 손 아래 내 이마와 어깨 눕힐 수 있으면 좋으리. 멀고 깊은 눈나라에 고요히 갇힐 수 있으면 좋으리.
‘통속미 혹은 존재의 희비극’
최현식 해설
류근 시인의 고백처럼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곳, 이 절대적 부재의 공간은 당연히도 “진정한 지옥”(시인의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자아의 경험의 편차, 절망과 허무의 언어적 밀도, 이 모든 것을 습합하는 영혼의 움직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생산한다. 누군가는 신의 절대성에 또 주눅 들고 누군가는 세계의 얄궂은 부조리에 치를 떨며, 누군가는 막막한 외로움에 눈물을 훔치고 누군가는 돌연 희희덕대며 위악을 떤다. 이 쓸쓸한 영혼들의 상처는 타자에 의해 가감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란 점에서 철저히 단독자의 형식이다. 이것의 기원과 흐름을 적절하게 파지하지 않은 채 수행되는 저 지옥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규정은 따라서 무례하고 폭력적일 수 있다. ……
통속 通俗.
삼류든 넘버 쓰리든 이른바 클래식과 정통의 지위에서 늘 미끄러지고 추방될 수 밖에 없는 주변부의 삶에 들러붙는 클리셰 하나를 꼽으라면 통속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 널리 통하는 것이란 원래의 뜻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저속한 흥미와 취미 위주의 행동과 정서를 일컫는, 아니 비꼬고 야유하는 말로 흘러온 게 그것이 지나온 길이다. 그런 까닭에 통속은 거의 예외 없이 비극이나 희극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누구나 견디고 즐길 만한 ‘달콤 쌉싸름한’ 희비극을 연출한다.
대중성과 흥미성의 전일적 결합은 통속의 집단적 소비와 유행을 일상화했다. 하지만 이것은 통속이 상영하는 희비극 tragicomedy 특유의 어떤 것, 그러니까 존재의 비극적인 공허함과 무의미함에 직면할 때 터져 나오는 일그러진 웃음이나 코믹한 비애 등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해석을 가로막는 불행한 안전장치로 미끄러지는 길이기도 했다. 과연 유희의 대상이지만 삶의 모델이어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냉랭함은 우리들에게 통속의 추악성을 부단히 증강시켜왔다. 최근 통속성이 위반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주요 지점의 하나로 떠오르는 추세는 아마도 이런 억압적·왜곡적 단며에 대한 집단적 거부 및 반발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
별리 別離 의 정한 情恨 은 버림받음과 결별을 독하게 자청함으로써 속되지 않고 오히려 숭고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극적 수동성이야말로 통속성의 대표적 형상이 아니던가. 만해의 어떤 시들에 가득한 통속성을 구원한 것이 절대 존재와 미의 지향이었다면, 시적 자아의 통속성을 상쇄하는 것은 단연 잠언적 언술, 그러니까 극한의 슬픔을 은폐하고 억압하는 말의 기술이다. ……
독작 獨酌 -
오독을 무릅쓰고 독작 獨酌 에 정서 조작의 혐의를 던져보는 것은 류근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이 통속성의 전면화와 이것의 지연적 遲延的 잠재화를 통해 존재와 세계의 희비극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류근의 시는 통속의 재현이 아니라 통속미의 표현이며, 절망과 패배의 서글픈 유희가 아니라 희망과 사랑의 절실한 되찾음에 가깝다. ……
우리는 류근의 상처와 영혼의 폐허가 어디서 기인했으며 또 어떻게 적층된 것인지 모른다. 연애의 언술은 일조의 가면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누구나 상상할 법한 ‘러브 어페어 Love Affair’ 의 뼈아픈 결과물은 아닐 듯하다. 비교적 그의 과거사가 담담하게 서술된 ‘86학번, 황사학과’ 와 ‘86학번, 일몰학과’ 등을 참조한다면, “폭력보다 더 아픈 희망의 언어들” 의 일상적 부재, “희망의 언어” 의 복원과 도래를 열렬히 욕망했으되 “습관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 같” 은 또 다른 공식적 “문학과 혁명” 의 창궐이 그의 니힐리즘을 충동하고 심화하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을까. ……
당신의 처음인 마지막 냄새의 자세 -
류근의 기억은 찬란한 과거의 현재화보다 잃어버린 것 혹은 다다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에 더 가깝다. 그것들은 그러나 ‘당신’ 으로 불리고 고백의 형식에 얹힘으로써 아연 따뜻해지고 보다 절실한 그리움으로 현상한다. ……
지도에 없는 마을 -
류근 시인은 ‘별자리’ 의 세속적 나포에도, 혹은 일찍이 루카치가 말한 별자리를 따르는 황홀한 운명에도 비교적 무관심하다. ‘별자리’ 는 충실한 안내자는 될지언정 그것이 비춘 저 “깊은 곳” 을 향한 이심전심의 동행자는 될 수 없다는 절대 고독의 토로가 도드라진다. 폐허화된 세계의 인식이 홀로 버려졌음에 대한 예민한 자각에서 출발되었듯이, 이 상실을 대체하고 보상할 희망의 원리 역시 냉철한 소외 의식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집 곳곳에서 날카롭게 출몰하는 자발적 소외 의식은 절대 세계와 절대 언어를 향한 시인의 열정과 욕망을 충실히 표상하는 예로 모자람 없다. ……
바다로 가는 진흙소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바타)”. ‘진흙소’ 의 행보는 필시 무소의 그것일 것이다. 미숙한 청춘의 떠돎이 일탈과 위반의 열정, 즉 사로잡힘이라면, 성숙한 영혼의 떠돎은 무욕과 무경계의 냉정함, 즉 자유이다. “벽을 열고 벽 속으로 길을” 여는 존재에게 모든 것은 의미로운 동시에 무의미하다. <상처적 체질>에서 통속과 낭만의 어법이 천연덕스럽게 구사되는 것도, 깊이에의 강박이 크게 엿보이지 않는 것도 시인의 영혼에 은밀히 내재된 ‘진흙소’ 가 심심 甚深 하게 표출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
집에 가는 길 -
“집에 가는 길” 은 언제나 행복하지만 또 언제나 처절하다. 가족은 불편한 우군인 동시에 친밀한 적일 경우가 적잖다. 그러므로 지벵 바쳐지는 노래는 어쩌면 “위독한 사랑의 찬가” 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위험한 친밀성은 사회, 곧 인간관계의 솔직한 현실이기도 하다. 단지 ‘나’ 를 방호할 참호 안에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질 뿐이다. 그러나 이 아이러닉한 현실에 걸려 있는 잘려진 ‘시간의 안팎’ 은 비극적이되 불행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불한 시간이야말로 “저 높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 낮은 곳의 별들을 보여주” 는 삶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포월 匍越 의 방식으로 불행한 시간을 부단히 월경하는 자에게만이 ‘나’ 와 ‘별’ 이 한 데 뒤섞이는 “지도에 없는 마을” = “깊은 곳” 은 허락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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