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좀 읽어볼까

류근 시집 - 어떻게든 이별

HUSH 感나무 2024. 9. 10. 14:43

 

 

 

 

 

류근 시집 - 어떻게든 이별

 

 

 


 

 

 

사과꽃

 

비 맞는 꽃잎들 바라보면

맨몸으로 비를 견디며 알 품고 있는

어미 새 같다

 

안간힘도

고달픈 집념도 아닌 것으로

그저 살아서 거두어야 할 안팎이라는 듯

아득하게 빗물에 머리를 묻고

부리는 쉬는

흰 새

 

저 몸이 다 아파서 죽고 나야

무덤처럼 둥근 열매가

허공에 집을 얻는다

 

 

 

 

 

 

 

 


 

 

 

 

나에게 주는 시

 

우산을 접어버리듯

잊기로 한다

밤새 내린 비가

마을의 모든 나무들을 깨우고 간 뒤

과수밭 찔레울 언덕을 넘어오는 우편배달부

자전거 바퀴에 부서져 내리던 햇살처럼

비로소 환하게 잊기로 한다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1991년, 통속적인, 너무나 통속적인

 

어머니는 시집간 누이 집에 간시히 얹혀살고

나는 자취하는 애인 집에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산다 그러므로 어머니와 나는 살아 있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닮지 않으려고 억지로 몸을 비트는 나무들에게

어째서 똑같은 이름이 붙여지는지 하루 종일

봉투를 붙이면 얼마나 돈이 생기는지

생활비를 받아오면서 나는 생활도 없이 살아 있는

내 집요한 욕망들에 대해 잠깐 의심하고

의심할 때마다 풍찬노숙의 개들은 시장 쪽으로

달려간다 식욕 없는 나는 술집으로 슬슬 걸어간다

 

나는 술에서 깨기 전에 잠부터 깨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이므로

내 안면방해의 주범은 언제나 햇살이거나 싸다고

싸다고 외치는 야채트럭 확성기 소리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정작 내가 미워하는 놈들은 따로 있는데

그림 그리는 내 친구 후배가 지국장으로 있는 한겨레

신문을 내가 보기도 전에 잽싸게 훔쳐가는

308호나 408호에 사는 대학생 놈들

밤도 새벽도 없이 술 취한 여자들을 끌고 들어와

또 한바탕 술판이나 벌이는 그놈들과

얼굴을 몇 번 마주쳤을 텐데도 내 기억에는

술집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그래서 쉽게 기억 안에서 놓쳐버리게 된다

내 눈에는 모든 길이 술집으로만 이어져 있고

맨정신일 때에는 외출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도 못하고 도대체 뭘 배웠냐? 내가 매달려

사는 애인의 어머니는 내가 그 귀한 딸에게 매달려

사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가끔씩 전화해서 기를 죽이곤 하는데

일본서 대학까지 마치고 온 이력에 비하면 형편없는

전업주부에 지나지 않으면서 내가 다닌 대학을

얕잡아보는 버릇이 있따 하지만 뭐 남들보다 몇 년

더 학교 다니고도 취직 못 하는 내 처지도

결코 내세울 만한 건 못 되기 때문에

나는 전화벨 소리만 나면 죽은 시늉을 하게 된다

취직을 하고 넥타이 매고 환속한 승려처럼

양주 아니면 안 마시는 지조를 갖추면 그때는

좀 크게 숨 쉬며 살 수 있을까?

 

내가 일없이 취해서 날마다 취해서

숙취와 악취를 지병처럼 앓고 살 때

어머니는 햇살을 피해서 잠만 자꾸 주무시고

그 바로 옆 벽 하나를 지나서

매형과 누이는 자주 늦잠을 잔다 그러나

들여다볼 수 없는 꿈 밖의 세월은

한 걸음만 나서도 우리들에게 벼랑이라는 것을

조카들만 빼놓고는 다들 알고 있다 알면서도

눈 뜨고 잃어버린 집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또 누군가에게 빨리 들켜버려서

편안한 마음으로 절망하고 싶어진다 평화롭게

항복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느 적군을 향해서

나는 나의 순결한 백기를 흔들어야 하는가

비틀거리며 돌아올 때마다 더 수직으로 빛나는

세상이여 나는 왜 이렇게 너희와 다른가

이렇게 닮지 않으려

몸을 비틀어야만 하는 건가

 

 

 

 

 

 

 

 

 

 


 

 

 

위험한 날

 

술꾼들에게 가장 위험한 날은

뭐 다 아시다시피

술맛이 물맛인 날이다

반드시 바닥에 누워 바닥을 본다

 

바람둥이에게 가장 위험한 날은

뭐 다 아시다시피

아무나 여자로 보이는 날,

이 아니다

여자가 다 아무나, 로 보이거나

여자가 오히려 나, 로 보이는 날이다

 

오늘 나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위험한 날은

지구에서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끼룩끼룩 눈물겨워서

하느님도 되고

어머니도 되고

작부도 되고

정류장도 되고

애인도 되어서 그냥 다 두어두고 싶은 날

울다가 사람으로

그만 돌아가고 싶은 날

 

기러기 남쪽으로 가고

메추라기 북쪽으로 간 바로 다음 날

그다음 날

 

우주의 꽉 찬 빈틈이 보이는 날

 

 

 

 

 

 

 

 

 


 

 

 

영화로운 나날

 

가끔은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갈 곳 없는 아침이었다

혼자서 객석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더러는 중년의 남녀가 코를 골기도 하였다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아서

혼자 순댓국집 같은 데 앉아 낮술 마시는 일은

스스로를 시무룩하게 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날은 길었다 다행히 밤이 와주기도 하였으나

어둠 속에서는 조금 덜 괴로울 수 있었을까

어떤 마음이든 내가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오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공연했다

심야 상영관 영화를 기다리는 일로

저녁 시간이 느리게 가는 때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식민지 출신이었다

아프리카엔 우리가 모르는 암표도 많을 것이다

입을 헹굴 때마다 피가 섞여 나왔다 나에겐

숨기고 싶은 과거가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어떤 밤엔 화해를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했다 그래도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지나갔다는 것 때문에 퍽 안심이 되었다

심야 상영관에서 나오면 문을 닫은 꽃집 앞에서

그날 팔리지 않은 꽃들을 확인했다 나 또한

팔리지 않으나 너무 많이 상영돼버린 영화였다

 

 

 

 

 

 

 

 

 


 

 

 

 

 

 

독작 獨酌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진실로 작별과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진실로 사랑한 사람과 작별할 때에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이승과 내생을 다 깨워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눈 감고 독하게 버림받는 것이다.

단숨에 결별을 이룩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아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지르고 운다

 

 

 

 

 


 

 

 

 

시인 류근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나 18년간 공식적인 작품 발표를 하지 않았다.

시집 <상처적 체질>과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등을 출간했다.

 

 

 


 

 

류근 시인의 말  

당신을 만나서 불행했습니다. 남김없이 불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 불행한 세상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어서 행복했고 사랑하는 사람 당신이어서 불행하였습니다. 우린 서로 비껴가는 별이어야 했지만 저녁 물빛에 흔들린 시간이 너무 깊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로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단 한 개의 손이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꽃이 피었고 할 말을 마치기에 그 하루는 나빴습니다. 결별의 말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 만나서 참으로 남김없이 불행하였습니다.

 

2016년 8월 다시 감성마을 慕月堂에서 류근 -

 

 

어느 전생이었는지 아득하지만 우리가 이 계절에 처음 만났던 기억이 있다. 나무들이 세상을 향해 마지막 등불을 밝혀드는 무렵이었다. 나는 조금 가벼운 절망을 앓고 있었고, 상심한 내부를 잘 들여다보기 위해 날마다 술집과 술집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럴수록 내 상처가 잘 보였다. 내 저항은 고작 세상의 변방 쪽으로 나를 데려다 눕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되어서 울지 않고도 한 계절을 잘 견딜 수 있었다. 종종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그런 것이었다. 아무런 예감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서 운명과 맞닥뜨리는 것. 운명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마침내 운명의 속살까지 다 비쳐 보이게 되는 것.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눈을 감고 운명이 내미는 칼끝을 받아들였다. 깊이 찔려서 무럭무럭 피 흘리고 싶은 낭패감조차 감미로웠다. 단 하루여도 좋을 지상의 날들이 11월 구름처럼 지나갔다.살아서 찬란한 것들은 위독하다. 꽃들은 곧 죽고, 잎사귀들은 속절없이 저문다. 나는 다시 술집으로 돌아왔다. 찬란하지 않아도 깊이 깊이 위독할 수 있는 나의 술자리로 나는 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잎사귀를 허물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는 병든 나무다. 스스로 잎사귀를 버리는 힘으로 나무는 겨울을 건너간다. 그리고 이 계절은 조금 가벼운 절망을 앓기에 얼마나 찬란한 시절인가.

 

 

 


 

 

 

‘상흔의 세월과 홀로 당당해지려는 의지’

홍정선 문화평론가

 

류근의 시는 쉽고 재미있다.   또 류근은 지난 시절의 많은 시인들처럼 은폐된 내면의 세계를 모호한 이미지로 암시하거나 이 세계에 대한 막중한 윤리적 책임감을 드러내는 일도 하지 않는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모호하고 거창한 탐구, 관념적이고 아카데믹한 탐구에 류근은 관심이 없다. 우리의 일상성을 넘어서는 문제, 지나치게 진지하고 고매하여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문제는 류근의 관심사가 아니다. 류근의 관심사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연애, 추억, 음주, 가족, 육체 등과 관련된 일상적 사건이나 생각들이다. 류근은 그런 것들을 입가에 웃음기가 피어오르게 만들 정도의 솔직함으로 우리 앞에 털어놓는다. 류근이 보여주는 비유적 구절들은 너무나 쉽고 친숙한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막상 발상의 시작은 어려운 것이어서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다. 류근의 시 <이빨論>은 쉬운 언어를 통해 무리 없이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과 미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문학은 윤리가 아니다. 드러내놓고 독자에게 설교하는 시, 폼 잡는 자세로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시는 결코 좋은 시가 아니다. 문학의 전면에서 문학다움을 보장해주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사물을 즐겁고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형상화이다. 이런 점에서 류근의 시는 독자를 즐겁게 만드는 표현 방법을 통해 뛰어난 형상화를 자랑한다.   류근의 시집에는 지나간 세월 속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유달리 많다. 류근은 이번 시집에서 어머니에 대해서, 자신의 한심한 행태에 대해서, 직업과 실업에 대해서, 술 마신 일에 대해서, 그리고 떠나가 버린 사랑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한다.    “내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 애인과의 섹스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애인은 / 그새 많은 것에 깊어진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라고 쓰고 있는 시 <휴가병>은 한 보잘것 없는 휴가병의 처지로는 상황을 바꾸어놓을 수 없는 어떤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 화자는 대처할 능력이 없으며, 그런 자기 모습에 대한 인식은 파행적 행태를 낳는다. 그래서 “그새 많은 것에 깊어진” 애인의 위로는 위로이자  슬픔이고 방향 모를 분노이다.    류근이 1991년이라고 연도까지 밝히면서, 통속적이란 부정적인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우리 앞에 끄집어내 보이는 이런 실업자 생활에는, 그가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것이 1992년이고 첫 시집은 간행한 것이 2010년이니까, 데뷔 이후의 20년 가까운 세월에 대한, 시로부터 도망다닌 것처럼 보이는 세월에 대한 비밀이 숨어 있을 법도 하다. 이 시가 보여주는 맥락으로 짐작할 때, 그리고 다른 시에서 “어디까지 흘러가면 아버지 없이 눈부신 저 무화과 나무의 나라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흘러가면 내가 아버지를 낳아 종려나무 끝까지 키울 수 있을까” (세월 저편)> 하고 탄식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류근은  아마도 가장의 책무를 거역할 수 없는 현실로 수락하며 이 세월을 살았을 것이다.    “내가 다닌 대학을 얕잡아 보는 버릇이 있”는(1991년, 통속적인 너무나 통속적인) 애인의 어머니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 오랫동안 시인의 길에서 비켜나 있었을 것이다. 가장의 책무를 수용하며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자신의 궁색한 변명에 신물이 나 마침내 생활인의 길과 시인의 길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시인의 길을 벗어나 있었을 것이다.    류근에게 실업자 생활은 끝없이 상처받고 상처를 만들어내던 모습으로 기억 속에 아프게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류근은 <나쁜 시절>이란 시에서 그런 시절에 대해서는 “10년씩 배경을 뛰어넘는 드라마처럼 /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라는 안타까운 희망까지 드러낸다.    류근은, 이번 시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 가운데 하나가 술이라는 사실이 증언하듯, 술을 멀리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를 그는 “술을 빌려 스스로 세상과의 격리를 실천해왔으니 / 오늘은 부끄럽지 않게 술마실 일이로다” 라고 쓴다.    “추억의 배후는 고단한 것 흘러간 안개도 불러 모으면 상처가 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바라보는 것”(세월 저편)이란 식으로 자신의 과거는 사소한 것들까지 지속적으로 덧나는 상처라는 사실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류근은 첫번째 시집 <상처적 체질>과 두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통해 자신이 상처투성이의 인간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류근이 ‘상처는 나의 체질’ 이라 말했던 것처럼 화자에게 상처 아닌 것이 없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화자에게는 상처이다. 돌이켜보면 가족에게 비겁했고, 가족 때문에 비겁했다. 애인에게 비겁했고 애인 때문에 비겁했다. 시 때문에 비겁했고 시에게 비겁했따. 그래서 세월은, 옛날은 온통 상처의 기록이다. 이 같은 점에서 류근의 두 시집은 시세계의 측면에서 연속선을 이루고 있지만 상처를 다스리려는 열망에서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 다친다 / 상처는 나의 체질 /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상처적 체질 中) 류근의 첫번째 시집에서는 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이름 없이’ 다친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상처는 상처일 뿐 죽음이 아니며,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자신은 다시 다친다고 말했었다. 그 때문에 화자는 이번 시집에서 옛날의 상처에 대한 많은 시편들을 생산하는 한편 그 상처와 ‘어떻게든’ 이별하려는 열망을 드러낸다.     …  류근에게 상처와의 이별은 새로운 상처이다. 이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류근은 <어떻게든 이별>이란 시의 마지막을, 이 시집의 결론을 “그러니 나의 이별을 애인들에게 알리지 마라 너 빼놓곤 나조차 다 애인이다 부디, 이별하자” 라는 말로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