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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본 세 번째 시집 - 그 여름의 끝

 

 

 

 

 

 

서해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바다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비단길 1

 

깊은 내륙에 먼 바다가 밀려오듯이

그렇게 당신은 내게 오셨습니다

깊은 밤 찾아온 낯선 꿈이 가듯이

그렇게 당신은 떠나가셨습니다

 

어느 날 몹시 파랑치던 물결이 멎고

그 아래 돋아난

고요한 나무 그림자처럼

당신을 닮은 그리움이 생겨났습니다

다시 바람 불고 물결 몹시 파랑쳐도

여간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별 1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습니까

 

 

 

 

 

 

 

 

 

 

숨길 수 없는 노래 2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시인 이성복은 195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겨울, 시 <정든 유곽에서>를

계간 <문학과지성>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세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에서

이성복은 연애시의 어법으로

세상에 대한 보다 깊고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이해를,

뛰어난 서정을 통해 새롭게 펼쳐 보여준다.

그의 시 세계는 깊이를 획득한 단순함으로,

나를 버리지 않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나와 타자에 대한 진정성의 사랑의 지난함을

지적 수사적 현란함 없이 평이하게 드러낸다.

 

 

그 여름의 끝, 자서 自序  --------------------------------------------------------------------------------

세 번째 시집을 엮으면서 역시 나는 내 그릇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내게 주어진 일은 남은 시간 동안 불과 몇 밀리라도 비좁은 그릇을 넓혀가는 것이리라.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마음속의 스승들께 부끄러운 책을 바친다. 1990년 5월 이성복

 

이성복의 말  ------------------------------------------------------------------------------------------------

오랫동안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왔다. 유독 왜 슬픔만이 세상 끝까지 뼏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슬픔 뒤에 다시 슬픔이 남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슬픔은 범속한 나뿐만 아니라, 세상 이체에 두루 통해 있는 성인들까지도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성인은 슬픔은 온통 슬픔 전체일 뿐, 다른 무엇의 대대 對待 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슬픔뿐만 아니라, 기쁨에도 본래 짝지을 것이 없다고. 하늘이 천둥 번개를 친 다음 노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언제 시체가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더냐고!

 

 

 

‘길’ 위에서의 사랑 노래  - ‘나의 그’ 를 이해하기 위하여

박철화 문화평론가    -----------------------------------------------------------------------

 

사랑과 고통의 체험을 가진 사람만이 음악을 이해한다. - 장 클로드 피게
왜 내가 이 땅의 한 시인에 대한 글을 시작하는 출발선에서, 위에 적은, 그것도 먼 변방의 한 음악학자가 말한 문구를 떠올렸을까?   …   내가 보기에 위의 문구가 이성복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말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의미에서 시와 노래의 삶이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음악이란 시와 노래와 삶을 아울러 표현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예술이 인간의 삶에 대한 총체적 성찰을 통하여 인간에게 훼손되기 이전의 순수한 가치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라면, 음악은 그 예술의 가장 궁극적인 표현 양식이 될 것이다.    …    기억의 지층 속에 파묻혀 있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가 내 손에서 펼쳐져 이성복의 젊은 날의 고통의 언어가 내 삶 안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문학은, 아니 엄밀하게 말해 그의 시는, 지니고 있기에는 너무 버거웠고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구원이자 도피처가 된 것이다.    …    나는 그에게서 이 세계가 끔찍하게 괴롭다는 것을 되풀이해 확인했다.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이 세계가 고통스러운 곳이며 그 고통에는 깊이가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절규였다. 그 절규가 되풀이해 일러준 것이 바로 세계와 삶과 인간에 대한 진실한 이해는 고통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깊이와 연관을 맺고 있으며, 그것은 얼마나 깊이 아파하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    현실과는 철저하게 불화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던 나의 의식은 ‘남해금산’에 대해 조그마한 틈입의 여유도 허용치 않고 있었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내린 젊음에 비탄스러워하던,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메마를 대로 메마른 나의 가슴에 ‘사랑’이란 말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그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세계’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적어도 주어진 ‘이 삶을 숙명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고 차라리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 지구를 멈추어준다면 뛰어내리고 싶었다.    …    내게 클로드 피게를 알려준 이 땅의 한 음악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랑의 체험은 남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하고 고통의 체험은 그 말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하다. 음악이 우리의 가슴 안에 울리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울림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울림은 빈 공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고통의 체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속에 빈 공간이 없고 빈 공간이 없이는 울림이 불가능하다.”    …    이성복에게 “문학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여러 사실들의 공식화된 표현이거나 내가 알아내려고 애쓰는 부분에 대입해보기 위해 임의적으로 만든 도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 표현이나 도식들은 대체로 대칭적이거나 역설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삶의 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대칭 또는 역설적인 삶을 받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시 또한 대칭적이거나 역설적이다.    …    끊어짐과 이어짐을 매개해주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그 존재의 바깥에 또 존재함으로써 부재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곳에 있어 가보면 당신은 그곳에 없다.(기표 signifiant 와 기의 signifie 끝없는 불일치라는 라캉 Lacan 의 담론 구조와 동형을 이루고 있는 이러한 이성복의 사유는 하나의 시적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 ‘따뜻한 비관주의’라 명명된 초기시에서부터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 낙관과 비관,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과 역사의 부질없음,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어느 하나에 쉽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고 삶을 살아내려는 자에게 팽팽한 긴장의 힘을 부여하고 있는 - 세계관이다.    …   .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 사랑 속에서도 입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 이 새어나오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