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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포르케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대통령은 환경 보호론자들부터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었다.

멸종 위기에 처하는 동물이 없도록

자연보호구역을 늘리겠다 공약했으나

환경보호론자들은 화만 냈다.

보호한답시고 정해 둔 보호구역에서

인간들은 사냥하고, 건물을 짓고,

살충제를 친다며 화를 냈고

자연의 일부를 보호하는 척하고는

나머지 지역은 죄다 파괴하고 있다며 화를 냈다.

대통령은 출구 전략이 필요했다.

 

트로쉬 고문은

진즉에 떠올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대통령의 출구 전략 아이디어를 고안하여

대통령에게 전한다.

 

그것은 바로 재판에 회부하자는 것!

법정에 동물들을 쭉 불러세워놓고

저마다 왜 보호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게 하는 것!

인간이 왜 그 종의 영역 서식지, 생태계를

보호하느라 애써야만 하는지를 설명하게 만드는 것!

 

동물들에게 인간과 같은 지위와 권리를 주고

변론의 목소리를 주는 주는 것이므로

환경운동가들도 반대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고문 트로쉬의 아이디어에 찬성하면서

법에 호소하는 건 좋지만 재판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했다.

최종 결정은 국민에게 넘겨야 했다.

 

중죄 재판으로 결단은 배심원이 내리는,

대통령에게 돌파구가 되어줄 재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역사상 가장 지적인 동물들이 벌이는

팽팽한 논박, 매서운 농담, 놀라운 반전이 있는 책

<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 은

프랑스 시사 풍자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에서 25년간 글을 써 온

장 뤽 포르케 JEAN-LUC PORQUET 의 작품으로

뉴스를 포착해 냉소적인 사회 비평을 퍼붓는

짓궂은 오리(카나르) 중 한 명인 그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치인의 위선을 유머러스하게 비판하는 작가다.

 

 

수리부엉이를 필두로

담비, 갯지렁이, 유럽칼새, 멧돼지,

들북살모사, 붉은제독나비, 여우가

차례로 법정에 소환되어

재판관 노트바르와 살벌하게 그러나 위트있게

설전을 펼친다.

 

 

법원에 소환된 지적인 여덟 동물 중,

갯지렁이와 들북살모사의 지적인 입담을 소개해보려 한다.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中 <갯지렁이>

 

 

 

갯지렁이

 

 

라틴어 명칭은 Arenicola marina.

서식지는 고운 모래가 있는 해안에 살아요.

 

우린 주로 낚시바늘 끄트머리에 걸린 채

농어, 명태, 도미를 유혹해요.

우리는 생선 낚는 미끼죠.

 

저는 4억 5000만년 전부터 이 지구에 살았죠.

우리는 척추가 없고,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아요.

 

우리는 오랜 노력과 기나긴 진화,

그리고 달 덕분에 특별한 피를 가지게 되었어요.

 

달은 밀물과 썰물을 관장하고

저는 조수의 리듬에 맞춰 갯벌에 살죠.

펄 아래 U자 모양으로 판 구덩이에

5년 남짓한 평생을 그곳에서 지내요.

밀물일 때는 여섯시간 동안 높이 차오르며

바둣물이 펄을 덮죠.

우리집을 바닷물이 가득 메우고

저는 계속 몸을 꿈틀거리면서 바닷물이

입구에서 출구로 순환하게 해요.

입을 쩍벌려 물을 삼키고 한 시간에 몇 리터씩 걸러 내죠.

무기물은 뱉어내고

생물들이 만들어 낸 유기물 찌꺼기며

미세 식물상과 미세 동물상은 전부 다 붙잡아 둬요.

산소도 같이 붙잡아 둬요.

복부 바깥쪽을 둘러싼 수많은 아가미 덕분에

바닷물에서 산소를 추출하고

그 산소를 피에 소중히 비축해 두어요.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물도 없고 먹을 거리도 없고

산소도 없이 여섯 시간을 지내야 해요.

그래서 헤모글로빈에 보관해 둔 산소로 살아가죠.

 

갯지렁이의 피는

혈관을 막는 혈전이 생기는 장벽이 없어

누구에나 수혈 할 수 있어요.

갯지렁이 피를 동결건조후 가루로 만들어

상온에서 몇 년동안 보관할 수도 있죠.

반면, 인간의 피는 영하 4도에서

겨우 40일 동안 보관 가능할 뿐이에요.

 

갯지렁이의 피는 인간의 피보다

산소를 40배 더 많이 저장하는 특성이 있어요.

몇몇 조건을 갖추면, 인간의 피를 대체할 수도 있구요.

 

이식할 장기를 보존 용액 안에 담아

이송하는 동안에는 산소가 부족해요.

몇 시간만 있어도 장기가 훼손되죠.

보존 용액에 제 피를 조금 첨가하면 산소를 공급해서

장기를 최대 며칠까지도 보존할 수 있고

제 피는 병을 더 잘 치료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해요.

헤모글로빈 1리터를 만드는데 갯지렁이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시나요?

수천마리가 필요해요. 갯지렁이 20kg이 필요해요.

 

갯지렁이 종이 인간에게 유용하니 보존하고 싶을 거에요.

저는 변하는 염도와 수온에 적응하는 법을 알아요.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는 건 해양 산성화죠.

지구 온난화가 심해질수록,

바다는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해서

해양은 점점 더 산성화 되죠.

그것이 제 DNA를 망가뜨리고,

정자의 질에 영향을 끼치고,

번식 능력을 감소시키겠죠.

 

한 종이 사라지면 네트워크 전체의 균형이 깨지고,

또 새로운 멸종을 불러일으킵니다.

한 줌의 동물들만 살리고

나머지는 사라지게끔 내버려 두는 건 말이 안 돼요.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中 <들북살모사>

 

 

 

 

들북살모사

 

 

라틴어 명칭은 Vipera ursinii.

서식지는 알프스 남부에 살아요.

 

1년에 세 번 허물을 벗고,

5월이 되면 짝짓기를 하고,

8월이 되면 암컷 살모사가

새끼를 평균 네마리 부화시켜요.

제 기대 수명은 20년 정도죠.

 

저는 메뚜기와 귀뚜라미 정도만 먹고 살아요.

하루에 귀뚜라미 한 마리나

메뚜기 한 마리면 배가 가득 찹니다.

 

제 독은 곤충에게만 치명적이죠.

포유류에게는 제 독이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해요.

순간 반사적으로 방어하려다 물기라도 하면,

붓게 만드는 게 고작이고 금세 가라앉아요.

저는 항상 인간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눈에 띄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죠.

건조하고 자갈이 많으며 대개는 황량하고

햇빛이 아주 많이 내려쬐는 곳,

고도 1000미터가 넘는

오래된 거대한 석회암 꼭대기에만 살아요.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10월부터 채비를 합니다.

땅속 40센티미터 정도 아래로 파고들죠.

제가 틀어박힌 땅 아래는 얼지 않아요.

심장은 거의 뛰지 않고 겨우 숨을 쉬는 정도여서

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아요.

잠을 잔다고는 할 수 없고,

마비 상태이자 혼수상태,

또 깬 채로 꿈을 꾸는 상태입니다.

 

눈 덕분에 저는 오랫동안 세상과 동떨어져 살았어요.

고도가 높은 곳이다 보니 눈이 잔뜩 내려서

1년에 몇 달씩 쌓여 있었죠.

그게 불행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보호 지역에 스키장이 생기면서

리프트 기계, 스키코스, 숙소 겸 식당들이 생겨났죠.

 

그러다 지구 온난화로

1미터씩 쌓이던 눈이 고작 40센티미터밖에 쌓이지 않자

스키 코스에는 자갈밭이 드러나고

그렇게 되면 관리자들이 불도저로

땅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죠.

제 서식지는 더 파괴가 되구요.

반세기 전부터 저는 인간에 쫓기고

나무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어요.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中 <판결>

 

 

 

개구리

인간의 소환에 응했습니다.

인간이 제기한 소송에 참석했죠

이런 정신 나간 아이디어를 아주 멀쩡하게 받아들이는 척했죠.

우리와 우리 후손의 생사에 관한 권리를

인간이 좌지우지한다는 아이디어말입니다.

재판을 받아야 하는건 바로 인간입니다.

오로지 안간이야말로 지구의 생활 환경을 맹목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비버

우리가 인간에게 판결을 내린다면 이렇게 되겠죠.

멸종이라는 고통을 겪으라고 말입니다.

당신들이 사라진다면, 다른 모든 생물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박쥐

기후를 엉망으로 만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당신들도 똑같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살충제를 뿌려서 곤충을 말살하면,

곤충들만 죽는 게 아닙니다.

당신들도 똑같이 죽습니다.

우리에게 저지른 해로운 짓은 결국 모두 당신들에게 돌아갑니다.

 

 

거미

이렇게 살아남은 동물들이 당신들에게 쓸모가 있거나

호감을 살 만한지와는 별 상관없습니다.

당신들 눈에는 혐오스러운 이 모든 동물들이 살아갈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당신들에게 요청한 적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당신들 허락이 필요하지 않아요.

 

 

꿀벌

우리 꿀벌들은 지금 당장 파업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전면 파업이죠. 일을 멈추는 겁니다.

우리가 거들어주지 않으면 번식할 수 없는 온갖 식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위해 공짜로 수정해 주는 식물들이죠.

우리는 당신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습니다.

 

 

지렁이

땅에 구멍을 뚫어 가며 길 닦는 일을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당신들 밭은 힘을 잃고 말거예요.

더구나 밭은 이미 망가지고 있습니다.

 

 

생쥐

우리는 실험실에서 달아날 겁니다.

아주 조금 만드는 암 치료제도 생쥐의 수없는 희생을 필요로 하죠.

 

 

반딧불이

생물종이 하나 사라지면 생태계가 뒤흔들립니다.

근래에 당신들을 덮친 코로나바이러스, 에이즈, 조류 독감, 사스, 에볼라 같은

전염병이 어디서 생겨났다고 생각하세요?

벌목을 하고, 도시화를 추진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생명을 해치면서 생겨난 겁니다.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면 전염병은 늘어납니다.

 

 

 

당신들의 생태계는 지구 전체입니다.

당신들이 우세종이 될 수는 있습니다.

파괴를 일삼는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자는 자기 영역 안의 모든 걸 파괴하지 않습니다.

결코 모든 걸 빼앗아 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당신들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거북이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생명이라는 이 기적을 공유하는 법을 말이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를 끊임없이 쇄신하며,

조율하고 또 다시 조율하는 법을요.

당신들 손으로 불행을 자조하지 말기를 요청합니다.

그게 곧 우리에게도 불행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높디 높은 사랑의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높은 경지죠.

꿈이라는 수준 높은 기술이자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꿈이 당신들을 별에 데려가고, 의식 속 아주 깊은 곳까지 데려가죠.

당신들은 언어를 발명해 냈어요.

무기가 내는 소리를 멎게 하는 게 언어의 궁극적인 목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