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이 책의 제목이 이미 알려주듯, 윤석열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개인적인 소회를 쓴 책이다. 유 작가는 20세기 고전 반열에 오른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언급하며 윤석열 덕분에 정치학 이론을 더 깊이 있게 이해했다며 서문을 연다. 유 작가는 윤석열 정부의 최대 리스크는 윤석열이라며 도자기 박물관 속의 코끼리, 주관적 철인왕, 친미사대주의자, 방구석 여포, 완성형 권력자, 정치업자, 김건희 특검법의 잠재적 피의자, 배신의 아이콘 등 윤석열에게 숱한 별명을 지어주며 윤석열을 그냥 - 막 깐다.
상상조차 해 본 바 없는 인물 대통령 윤석열에 어처구니를 잃어버렸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한민국의 검찰이었다가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이 된 윤석열의 개바보짓에 대해 매우 약간 납득이 되어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지속되던 체기가 조금은 내려간 듯하다.
신랄하게 비판하던 유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범야권의 표를 모두 긁어 모으고 여당 국민의힘에서 몇석의 의석수를 빌려 국회에서 탄핵소추권이 통과된다 해도 탄핵심판권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기각하면 윤석열은 권력을 되찾아 역공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며 탄핵이 확실해 보일 때 자진 사퇴 형식으로 윤석열의 물러날 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 시대의 현자 유시민 작가의 제안은 설득력이 있지만, 윤석열 김건희 부부를 얌전히 물러나게 하는 것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는 생각이 컸다. 마지막장을 읽고 책을 덮을때까지만 해도.
현재, 헌법재판소의 판사는 여섯명으로 세 명이 부족한 상황으로 헌법재판소는 3개월째 개점휴업중이다. 국회의 몫인 재판관 3명의 임명이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헌재는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시에만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정한 헌법재판소법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지만, 국회를 통과한 탄핵소추권이 헌법재판관 여섯 명 중, 단 한 명만 반대해도 기각될 수 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는 닉슨의 모든 범죄 혐의에 대한 놀리 프로시콰이 Nolle Prosequi (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을 선언함으로 닉슨은 그 어떤 조사도, 재판도 받지 않고 저지른 범죄의 처벌을 피한 예를 들며 퇴로를 열어주고 탄핵을 추진하는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유작가는 말한다.
덧붙여 유작가는, 놀리 프로시콰이 Nolle Prosequi (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 제도는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만 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의 잘못도 함께 사면하는 제도라 말한다.
당분간 큰 선거도 없거니와 대통령 탄핵을 한 번 경험한 국민의힘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하는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여의도 정가에 유령처럼 떠도는 검찰 캐비넷도 두려울 것이다. 나라를 생각하면 유작가의 말이 타당해보인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생각하면 분노의 눈물을 머금고 퇴로를 열어줘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코끼리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으니, 더는 남은 도자기를 깨트리지 않게 친절히 나가는 문을 안내해 주고 열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씨 - , 눈물 삐져나온다.
윤석열은 권력자인가? 사악한? 어리석은? 사악하고 어리석은? 나는 어리석은 권력자라는 데 한 표를 주겠다. 그는 사악한 짓을 많이 한다. 하지만 사악해서가 아니라 어리석어서다. 유 작가의 이 말에 전적 동의하며 무능한 대통령 윤석열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책 속에서 쭈욱- 쭉 밑줄 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4050 세대는 ‘젊은 벗’으로 여긴다. 그리 어렵지 않게 대화할 수 있다고 느낀다. 젊은 벗들한테 말하고 싶다. 그대들이 앞으로 40년 한국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적 문화적 역량이 희망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그대들이 다음 세대의 존경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면 대한민국은 사람 살만한 세상이 되어 있을 거라고.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고. 항상 그대들을 응원하는 노인이 될 거라고. 그러니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윤석열이라는 병’을 이겨내자고.
책 속 밑줄
P.21
국가와 정치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연구한 포퍼는 정치철학이 다루어야 할 질문을 다르게 제시했다. “사악하거나 무능한 권력자가 마음껏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정치제도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P.22
포퍼는 올바른 질문을 제출했고 적절한 답도 내놓았다. ‘권력의 제한과 분산’이었다.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막는 법치주의, 선출 공직자의 임기 제한, 삼권 분립과 사법부의 독립, 언론·표현·집회·시위 등 시민의 기본권 보장 같은 것이다. 이런 제도는 사악하고 무능한 자가 권력을 차지해도 악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선을 최대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악을 최소화하는 제도다.
P.24
포퍼는 민주주의와 독재를 구분하는 기준을 단순 명확하게 제시했다. 다수 민중이 마음을 먹었을 때 평화적 합법적으로 권력을 교체할 수 있으면 민주주의, 그게 불가능하면 독재 전체주의다.
윤석열은 권력자인가? 사악한? 어리석은? 사악하고 어리석은? 나는 어리석은 권력자라는 데 한 표를 주겠다. 그는 사악한 짓을 많이 한다. 하지만 사악해서가 아니라 어리석어서다.
P.25
원인이 어디에 있든 윤석열은 악을 저질렀다. 몇 가지만 말하겠다. 검찰을 동원해 이재명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했다. 경찰·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방통위·방심위 등 모든 권력기관과 규제기관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흠집 내고 비판언론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이념 외교와 부자 감세 정책으로 대규모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만들었다. 남북관계를 냉전 시대로 되돌렸다. 국익을 팽개치고 미국과 일본 정부를 추종했다.
P.26
국가는 추상적인 존재다. 정부도 그렇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정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국가의 수준은 정부의 수준이 좌우하고, 정부의 수준은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의 수준이 결정한다. 윤석열은 정부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인간 윤석열 수준으로 내려앉는 중이다.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P.27
‘그놈이 그놈’이란 말은 입에 담지 말자. ‘누가 해도 똑같다’는 말은 틀렸다. 어떤 사람이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사회의 상태와 국민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말줄임표) 윤석열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아는 게 거의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한다.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데도 스스로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주관적 철인왕’이다.
P.37
나는 어느 시민의 블로그에서 본 문장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진 사람.’
P.44
윤석열을 보면서 마음에 새긴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관용이 악의 지배를 연장한다는 것을. 부족한 그대로, 서로 다른 그대로 친구가 되어 불완전한 벗을 관대하게 대하면서 나아가야 악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P.41
보수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뉴스를 보면 자신에게 이익인지 여부를 먼저 생각한다. 진 보는 그 정책이 옳은지 여부를 먼저 생각한다.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지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것 같은 사람이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면 사람들은 칭찬한다. 그런데 세상을 위해 사는 것 같았던 사람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모두가 비난한다.
P.54
윤석열 같은 사람을 다시는 대통령으로 뽑지 않으려면, 선거여론조사 데이터와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를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거듭 말한다. 경험은 좋은 선생님이다.
P.62
언론은 일방적으로 윤석열을 편들었다. 극소수 중립 성향 언론사를 제외한 모든 신문 방송이 그랬다. 윤석열을 검증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했고 이재명 관련 의혹은 진위를 가리지 않고 부풀렸다. 윤석열은 정치권을 넘어 언론까지 포섭했지만 이재명은 민주당 내부조차 결속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일을 맞았다.
윤석열은 경선 차점자 홍준표와 유승민을 홀대했다. 꼴지 원희룡한테만 장관 자리를 주었다. 젊은 남성 유권자의 지지를 받던 이준석을 내쫓았다. 그 자리에 도전한 안철수를 모욕했고, 나경원을 공개 협박해 주저앉혔다.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는 측근 김은혜를 지원해 유승민을 무릎 꿇렸다. 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던 김기현을 당대표로 사실상 지명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김기현 마저 내쫓고 한동훈을 법무부장관에서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이동 배치했다.
윤석열은 보수와 중도의 연합을 깨뜨리고 보수를 분열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내각과 정부기관에 극우 성향의 망나니, 무능한 아첨꾼, 정치 검사, 심지어 술친구까지 불러들였다. 대통령실과 정부에서 공직 경력을 부풀린 측근과 전직 검사들을 총선에 내보냈다.
P.94
민주당은 국힘당이 아니라 언론과 싸운다. 국힘당이 부탁하지 않아도, 장악하려고 애쓰지 않않아도, 언론 스스로 알아서 국힘당을 보호하고 민주당을 공격한다. 언론은 다른 진보정당에는 관심이 없다.
P.95
국힘당은 정상적인 보수정당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정당이고, 보수언론은 사회의 목탁이 아니라 세상의 흉기이며, 재벌언론과 족벌언론과 건설사언론은 사주와 광고주와 종사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익집단이라고 본다.
P.96
극소수 공영방송을 제외한 언론사는 모두 사기업이다. 언론 사기업의 대주주 또는 오너는 대한민국 0.0001 퍼센트 부자다. 대통령도 건드리지 못하는 특권층이다. 그들의 고객은 재벌 대기업 광고주다. 대주주와 광고주는 대체로 국힘당을 지지한다.
P.97
공영방송과 극소수 독립언론 말고는 어느 언론사도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규범이 현실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젠 그마저 그만두었다.
P.99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같은 독립언론은 국힘당 편도 민주당 편도 아니다. 하지만 시민언론 또한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기자들의 언론’이다. 그들은 정치권력과 광고주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말이라도 그렇게 한다. 다 지키지는 못해도 말한 대로 하려고 노력은 한다. 독자에게도 종속되지 않으려 한다. 오로지 기자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보도한다.
한겨레는 시민의 신문으로 태어나 기자들의 신문이 되었다.
민주당 기관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래서 국힘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최대한 중립과 균형을 지키려 했다. 조국 사태 때도 그랬다. 검찰이든 조국이든 잘못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비판했다. 윤석열이 검찰을 동원해 이재명을 제거하려고 할 때도 윤석열과 이재명 사이에서 중립과 균형을 지키려고 했다.
P.101
한겨레는 그렇게 하라고 만든 신문이 아니다. 창간 자금을 댄 주주들, 배달의 불편을 참아가며 구독했던 독자들은 혼자 균형을 지키는 신문이 아니라 세상의 균형을 실현하는 신문을 원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언론 엘리트들은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보다 스스로 균형을 지킴으로써 자기만족을 얻는 데 집착했다. 권력과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태도로 주주와 독자의 요구를 외면했다.
나는 언론 엘리트의 자기만족에 보탬이 되는 신문이 아니라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신문을 보고 싶다.
P.116
자본 없이는 언론기관을 만드는 게 불가능했다. 국가와 부자만 언론기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언론에 대항하려고 한겨레를 창간했는데, 한겨레가 제 몫을 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정치인은 언론에 의존했다. 언론인에게 잘 보이려 했다. 언론에 굴복하고 굴종했다. 그것을 거부하고 대결한 정치인은 노무현이 처음이었다. 결국 언론이 검찰과 손잡고 그를 죽였다.
P.121
김어준은 여론조사를 동원한 대중심리 조작을 막지 못한 것이 이재명 낙선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판단했다. 그런 사태를 막으려고 ‘여론조사 꽃‘을 세웠다. 김어준의 문제의식에 공감한 시민들이 정기구독자로 가입해 돈을 보탰다.
김어준이 외모만 장비 같은 게 아니다. 조조의 대군을 멈추게 했던 장판교의 장비처럼 언론의 편파보도와 여론조사 공세를 막아냈다.
P.122
그렇다. 김어준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공정하다. 사실을 토대로 논리의 규칙에 따라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한다. 저널리즘 규범을 모두 거부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언론보다 더 철저하게 준수한다. 김어준은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대중은 김어준을 저널리스트로 본다. 머지않아 그를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인정할 것이다.
우리 언론은 자유를 찾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기여한 바 없다.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협조하거나 앞장선 적은 많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국민과 함께 군부독재와 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군부독재에 빼앗긴 자신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 언론은 언제나 권력 가진 자, 돈 많은 자, 많이 배운 자, 기득권자의 편을 들었다. 스스로 균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균형을 파괴했다. 지금도 그렇다.
P.124
언론을 보면 앞이 캄캄하다. 한국 언론은 재벌 대기업과 한몸이고 국힘당의 전위이며 부패한 권위주의 문화의 수호신이다. 그 자체가 특권집단으로서 사회의 모든 부당한 특권을 지킨다. 특권을 비판하는 개인과 집단을 가차없이 물어뜯는다.
P.135
윤석열이 읽었다고 말한 유일한 경제 서적이 있다. ‘선택할 자유 Free to Choose’ (밀턴 & 로즈 프리드먼 지음, 민병규 외 옮김, 자유기업원, 2022)다. 이것 말고는 그가 책 이야기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밀턴 프리드먼은 ‘광신적 시장주의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불쏘시개가 되었던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부정했다. 정부의 통화정책 실패로 생긴 일시적 혼란이었을 뿐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 결함에서 생긴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정부 업무는 대부분 특수 집단의 특수 이익을 지켜주는 일이므로 최선의 경제정책은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규제 철폐와 감세를 옹호했고 노동조합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으며 최저임금제와 사회복지정책 폐지를 권고했다. 윤석열은 부친의 권유를 받고 그 책을 읽었으며 여러 해 동안 끼고 다녔노라 말했다.
P.152
대를 이어 경영권을 상속한 족벌언론, 건설업자가 대주주인 건설사언론, 대기업이 대주주인 경제신문들은 이동관 씨가 말한 기관지로 보는 게 맞다. 그 기관지의 직원은 ‘언론인’이 아니라 ‘선전일꾼’이라 하는 게 적절하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기득권 복합체를 비판하는 모든 개인과 정치세력을 대중과 떼어놓기 위해 능수능란하게 선전 선동을 수행한다. 진보 시민단체와 민주당, 거기 속한 사람을 타격 대상으로 삼는다. 필요하면 언제든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리고 진실을 은폐하며 정서적 혐오감과 적대감을 부추긴다. 그들이 생산한 기사로 넘쳐나는 포털의 뉴스 면을 보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기사 수준이 너무 저열해서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과 귀를 씻어야 할 판이다.
P.155
KBS를 장악해서 윤석열은 무엇을 얻었는가. 여당의 총선 참패를 가속했을 따름이다. 언론을 강제 통폐합하고 보도지침을 내려보내 모든 신문 방송을 정권의 기관지로 만들었던 전두환의 권력도 한 순간에 무너졌다.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수집한 열 달치 <보도지침>을 월간 ‘말’이 폭로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6월 민주항쟁이 터졌다.
윤석열은 전두환과 비슷한 데가 많아서 평행이론이 나올 만하다. 전두환은 군부 쿠데타로, 윤석열은 검찰 쿠데타로 직속상관을 공격해 권력을 차지했다. 전두환이 극소수 정치 군인을 권력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처럼, 윤석열은 극소수 정치 검사를 권력 핵심에 기용해 권력을 운용한다.
P.172
한국 정부는 미국에 155밀리 포탄을 제공했다. 2022년 10만 발을 판매했고, 2023년에는 50만 발을 빌려주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포탄을 직접 우크라이나에 주었는지, 아니면 미군이 창고에 있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주고 한국 포탄으로 재고를 채웠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어쨌든 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외교 원칙을 파기하고서도 국민에게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아무 해명을 하지 않았다.
P.176
‘사대’는 생존의 방편일 뿐이다.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 통일 신라 이후 우리가 ‘사대’를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어떤 중국인은 조선을 명과 청의 속국이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생존의 방편으로 ‘사대’를 했지 마음으로 굴복하지는 않았다.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대주의’는 다른 문제다. ‘사대’를 생존의 방편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로 여기는 것이 사대주의다. 살기 위해 ‘사대’를 하는 게 아니라 옳다고 믿어서 ‘사대’를 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사대주의자인가? 그런 것 같다.
P.181
헌법이 준 대답은 분명하다. 육군을 포함한 우리 국군과 육사를 포함한 군사교육기관은 모두 광복군을 뿌리로 삼아야 한다. 창설 이후 30년 동안 일본군 경력을 가진 참모총장들이 육군을 지휘했고 설립 초기 육사 교장 여럿이 일본군 출신이었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역사의 사실이다. 하지만 육군과 육사가 그 사실에 얽매여야 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극복해야 할 과거일 뿐이다. 그런 사실이 있기 때문에 육군과 육사가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역사의 사실과 헌법의 당위를 뒤섞는 것이다.
P.182
윤석열이 친일파여서 육사 교정의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했다는 해석이 있지만 나는 달리 본다. 근본 원인은 친미 사대주의다.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봉쇄하려고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 한다. 미국 대통령이 회장, 일본 총리가 지사장, 한국 대통령이 지점장을 맡는 기획이다.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면 이 구상을 원만하게 실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바이든은 일본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해주는 윤석열의 외교를 칭찬했다. 윤석열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면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일본 정부와 기업을 대신해 한국 정부와 기업이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핵 오염수 방류 문제도 일본 정부를 두둔했다. 라인 지분을 넘기라고 네이버를 압박한 일본 정부의 행위까지 비호했다.
P.191
사람은 능력이 저마다 다르다. 능력은 일반지능, 전문 지식, 업무 자세, 타인을 대하는 태도, 전략적 사고 능력, 경험의 폭과 깊이 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 모두를 종합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A급이라고 하자. A급은 A급을 알아보고 좋아한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경우도 흔하다. A급 책임자가 전권을 쥐면 주로 A급 인재를 기용한다. 그러면 그 A급들이 또 다른 A급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B급을 조직 책임자로 임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B급은 A급을 반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B급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B급 책임자는 기껏해야 B급을 기용한다. 아부를 잘하면 C급, D급도 마다하지 않는다. A급은 기용하려고 해도 어렵다. A급 능력자는 B급 밑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조직은 C급 이하 등외까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채워진다. 윤석열은 어느 급인가? A급이 아닌 건 확실하다.
P.192이태원 참사부터 청주 지하도 참사, 세계 잼버리 대회 파행, 부산 엑스포 유치전 참패,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환율 폭등, 물가 상승, 의대생 증원 관련 대형병원 진료 마비까지, 모든 사태는 어리석은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정치적으로 사유화해 무능한 사람들을 중요한 자리에 앉힌 탓에 일어났다.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책임자 가운데 A급은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잘해야 B급과 C급, 심지어는 등외 기관장과 참모도 수두룩하다.
P.251
어느 시사비평 프로그램에 출연했더니 진행자가 물었다. “보수정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나라가망하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 여전히 유효한가요?” 어떤 시민이 거리에서 나를 붙들고 말했다. “정말 나라 안 망하나요? 망할 것 같아 무서워요. 나는 매번 이렇게 대답했다. “대한민국이 멍들고 상처 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아직 뼈가 부러진 건 아닙니다. 이 정도론 죽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다르게 말할 것 같다. “정말 망할지도 모르겠네요.”
P.252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잘못된 만남’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와 인간 윤석열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본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P.254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둘 있다. 하나는 바람직하고 다른 하나는 무난하다. 둘 모두를 거부하면 그가 바라지 않는 운명이 주어진다.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자진’ 사퇴다. 그 자신과 가족과 한국 정치와 국민의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반드시 ‘자진’ 사퇴여야 한다. 사임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사임하는 것이다. 사임하지 않으면 더 곤란해진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하면 자진 사퇴가 아니다. 한국 정치와 국민한테는 자진 사퇴나 마찬가지지만 윤석열 자신과 가족한테는 불리하다. 불행을 다 피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있는가? 없다. 그런데 왜 자진 사퇴를 검토하는가?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경로를 하나씩 삭제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로가 남는다. 그게 윤석열의 운명이 된다.
P.261
김건희와 최은순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것은 증명된 사실이다. 공범들의 재판에서 계좌 내역과 통화 녹취록을 포함한 증거가 충분할 정도로 나왔다. 거기서 얼마나 이득을 보았는지 액수를 명시한 검찰의 보고서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형 범죄가 아니다. 혼인하기 전 일이라 윤석열하고 관계가 없다. 그러나 주가조작 사실이 드러난 뒤 김건희가 조사를 받지도 기소되지도 않은 것은 권력형 범죄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검찰이 사건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기소한 시점에는 김건희가 윤석열 검사의 배우자였다. 그가 중앙지검과 검찰총장으로 재직한 시기에 진상 규명 요구가 빗발치는 데도 검찰은 서면 조사를 한 번 했을 뿐이다.
P.270
2천여 년 전 사마천은 <사기 - 백이숙제열전> 에서 ‘하늘의 도’ 라는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러나 도척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도당을 모아 천하를 더렵혔는데도 천수를 누렸다. 니는 의심한다. 하늘의 도는 과연 있는가.”
P.283
일상생활 공간에서 동료 시민들과 윤석열이 임기를 채우게 허락해도 대한민국이 괜찮을지 토론하자. 탄핵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온-오프라인으로 공유하자. 저마다 언론이 되어 윤석열의 헌법과 법률 위반 사실을 알리자. 형편이 된다면 탄핵 요구 집회에 참여하자. 귀찮다 말고 여론조사 전화를 받아 탄핵에 찬성한다고 대답하자. 국민은 대통령을 뽑을 권리가 있고, 자신이 뽑은 대통령을 파면할 권리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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