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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감나무집 허쉬입니다.

오동진 영화 평론가의 민들레 언론 기사 전문을 옮겨봅니다.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 없는 영화, 시빌워 분열의 시대에서 독재자의 최후를 시원하게 맛보자구요!

 



트럼프가 일으킬 미국 내전 상상한 영화, 한국은?


윤석열 일당이 원하는 것도 분열과 내전 아닌가
심리적 내전 상태의 미국을 보여준 로드 무비
영화로라도 시원하게 맛보라, 독재자의 최후를

할리우드는, 아니 적어도 알렉스 가랜드 감독('엑스 마키나' '멘' 등 늘 기발한 상상력의 영화를 만든 인물)은 트럼프의 복귀를 예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의 상황까지도 상상했는데 하나는 반드시 미국은 분열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트럼프의 말로가 그리 해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런 내용으로 만든 영화가 ‘시빌 워 : 분열의 시대’이다. 미국은 둘로 쩍 갈라졌을 뿐만 아니라 내전을 벌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몰락' 대통령 인터뷰 위해 내전 한 복판 뛰어든 기자들

영화는 이미 내전이 한참 지난 후이며,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트럼프로 추정되는 대통령(닉 오퍼맨)이 TV 중계 카메라 앞에 선다. 문제 있는 대통령들은 늘 TV앞에서 장광설과 자기 주장, 자기 합리화를 강하게 토해내지 않던가. 영화 속 대통령은 이제 최후의 일전만이 남았으며 저항군은 섬멸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서부군=저항군이 제안한 평화정상회담을 단호하게 거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TV 연설을 보고 있는 주인공 리 스미스(커스틴 던스트)는 그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표정을 짓는다. 전황은 대통령의 거짓 프로파간다와는 다르게 서부군이 이기고 있으며, 곧 워싱턴D.C.로의 진격이 눈앞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점령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다. 주인공 리는 전설의 사진기자이다. 『매그넘 포스트』 지 소속인 그녀는 늘 분쟁의 한 가운데에서 셔터를 눌러 왔으며, 그녀의 용기 있는 사진 한 장이 내전의 상황을 변화시켜 왔다.

 



리는 마지막으로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왜 내전을 일으켰고 그에 대한 사과나 뉘우침이 있는지를 물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챙긴다. 리가 있는 콜로라도에서 백악관까지는 1379km 거리이다. 그녀의 장거리 행군 길에 동행할 인물들은 또 다른 카메라 기자인 조엘(바그네르 모라)과 이제는 걷기조차 힘들어 하는 원로 기자 새미(스티븐 헨더슨), 그리고 이제 막 사진기자 길에 들어 선 루키(rookie) 제시 등이다. 이들은 오로지 몰락 중인 대통령의 사진 한 장, 그와의 짧은 인터뷰 한 대목을 건지기 위해 위험천만한 전쟁의 한복판으로 길을 떠난다.

 

 

 



심리적 내전 상태의 미국을 보여준 로드 무비

‘시빌 워 : 분열의 시대’에는 기대하는 것만큼 미국 국민들이 동군·서군 식의 띠를 두르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 같은 것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전차부대가 동원되고 바주카 포탄이 난무하며 고도의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은 마지막이 돼서야 나온다. 이 영화는 전투 영화나 전쟁영화가 아니라 그냥 로드 무비이다. 주인공 리 등이 감행하는 미국 횡단의 (출장) 여행길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현재 얼마나 갈가리 찢어져 있고, 향후 트럼프 시대에 얼마나 더 갈가리 찢겨지게 될 것인가를 간파한다. 미국은 이미 분열됐으며 거의 심리적 내전 상태임을 보여 준다.

 



리 일행이 맞닥뜨리는 위기 상황은 매우 현재적이다. 언뜻 보기에도 극우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정부군 장교(제시 플레먼스)는 리 등에게 너는 어느 계(系)냐, 너(의 부모)는 어디에서 왔냐고 질문한다. 그리고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총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한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WASP(화이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 중심주의자이다. 미국이 망한 것은 다민족 다인종 탓이라고 생각하거나 계급의 순위가 잘못 짜여서라고 생각한다. 리 일행은 홍콩계 부모를 둔 동료 사진기자가 그 군인에 의해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미국인이라는 정체성, 그 정치성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런 일을 서슴지 않느냐는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든다.

 

 

 



미국과 세계 곳곳서 날뛰는 극우 디스토피아

이건 단순히 영화의 한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인생관과 정치철학, 그의 국정 기조를 대변한다. 장래의 미국, 적어도 향후 4년 간 미국에서 벌어질 끔찍한 일들을 예고한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민주적 가치와 인권의 절대성을 구하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나라가 아니다. 골수 반미주의자들이라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는 태초부터 군산복합체에 의해 지배되는 나라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은 미국을 1950년대의 매카시즘 광풍을 이겨내고 60,70년대의 민권 운동을 거쳐 최고는 아니어도 최악은 아닌, 차악의 민주국가 정도는 되는 나라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지켜지는 나라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등장을 전후해 강고하게 진행되는 미국 우선주의, 일국주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이 한 순간에 파렴치한 독재국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미국은 향후 4년간 KKK단(백인우월주의 집단)과 같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는 내다보고 있다.

 



그 끔찍함을 예견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는 가공(可恐)할 디스토피아 영화이다. 영화는, 마지막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알렉스 가랜드 감독 같은 정상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깃들여 있음직한, 트럼프에게 과연 어떤 최후를 맞게 해야 할 것인지, 그 욕망을 그려 낸다. 다들 영화 속 결말, 우리 모두가 충분히 ‘악마스러울 수 있음’에 동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어디 미국 뿐이겠는가. 세계는 지금 시리아 난민 문제로부터 비롯된 극우주의자들의 준동으로 나라마다 다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다. 프랑스가 됐든 독일이 됐든 캐나다가 됐든 난민들이야 말로 자국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이들을 몰아내야 하며 자국 우선주의의 경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노동자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이용하는 정치 세력들이 표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로라도 시원하게 맛보라, 독재자의 최후를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작’은 우리 자신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최근 한국의 탄핵 정국에서 집권당의 행태와 그들이 옹호하는 대통령이 결국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들 역시 이 영화에서처럼 분열과 내전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경호대장이라는 여성이 나와 서부군에게 대통령의 신변을 약속해 달라고 말하지만 가차없는 총격 세례를 받는다. 백악관을 치고 들어간 저항군 소대는 일종의 참수부대이다. 이들이 맡은 임무는 영화일 뿐이지만, 어쩌면 속 시원한 일이다. 세상 일이라는 게, 곧 미국의 정치나 한국의 상황이라는 게 속시원하게 풀려지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불편하고 답답할 뿐이다. 영화로라도 시원한 결말을 맛보라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결연한 의지로 보인다. 

영화의 한국 개봉은 12월 3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