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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좀 읽어볼까

백석 시집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by HUSH 感나무 2024. 8. 10.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 木手 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을 붙이었다 : 주인집에 세 들었다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굴기도 하면서 : 구르기도 하면서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 옆

갈매나무 : 키가 2m쯤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 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따디기 :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흙이 풀려 푸석푸석한 저녁 무렵

누굿하니 : 여유 있는

살틀하든 : 너무나 다정스러우며 허물없이 위해주고 보살펴 주던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있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十五爥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도연명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바람벽 : 집안의 안벽

때글은 : 오래도록 땀과 때에 전

쉬이고 : 잠시 머무르게 하고, 쉬게 하고

앞대 : 평안도를 벗어난 남쪽지방. 멀리 해변가

개포 :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이즈막하야 :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은. 이슥한 시간이 되어서

 

 

 

 

 

 

 

 

분단시대 극복의 정점에 서 있는 천재 시인  -  백석

1912년 평안북도 정주 태생인 백석은 재북 在北 시인인 탓에 우리 문학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다가 1988년 납·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에야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는 남과 북이라는 체제적 성격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가장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었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 白夔行 . 기연 夔衍 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 白石 . 奭인데 주로 주로 백석 白石 으로 활동했다. 석 石 이라는 이름은 일본 시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 石川啄木 의 시작품을 매우 좋아하여 그 이름의 석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1930년 1월 5일 단편 < 그 모母와 아들 > 이 조선일보 소년현상문예에 당선되고 이를 계기로 조선일보 부사장이던 정주 출신의 계초 방응모의 눈에 띄어 도쿄로 유학갈 수 있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교사자격증을 취득해 귀국한 백석은 학교가 아닌 1934년 4월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한다. 처음의 백석에 대한 사내 평판은 그렇게 호감적이지 않았다고 사람이 새파랗게 젊어가지고 도도하고 사장의 세력을 믿는 건가. 원 그러면서 시를 쓴다는거야 라는 백석의 평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백철 평론가는 전한다.  조선일보 지면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임종 체호프의 6월>을 비롯한 여타 번역 원고들을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러시아 비평가 미르스키의 논문 <죠이쓰와 애란문학愛蘭文學> 은 백석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르스키는 애란(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턴 싱이 게일어 Gaelic 가 뒤섞인 영어 방언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때문에 백석 역시 고향인 평안도 방언을 보편적인 시어로 써야겠다는 인식에 도달했던 것이다.

백석은 1935년 8월 31일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소설가에서 시인으로 변신한다. 백석은 1936년 1월 20일 첫 시집 <사슴>을 낸다. 이미 발표한 7편과 미발표시 26편을 합쳐 33편이 실린 <사슴>은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되었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독자가 서로 돌려보며 시집을 거의 통째로 암기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남북은 분단됐고 백석은 북한에 남았다. 백석의 백석다운 시가 여기서 중단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자 우리 문학의 비극이다. 그러나 문학은 상실이라는 토양에서 성장한다. 천재시인 백석이 노래 부른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 는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100년을 비추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화 燈火 이다.

- 정철훈 문학전문기자의 <백석을 찾아서>를 요약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