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이 책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젊은 시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 10편이 담겨 있다. 어느 날, 육군사관학교 정원에서 릴케의 시를 읽던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는 교목 호라체크 목사에게 군사유년학교 시절의 릴케 이야기를 듣게 되고 릴케에게 첫 편지를 보내게 된다.
예술을 향한 열망과 현실적 삶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방황으로 자신과 비슷한 삶을 걸었다고 생각되는 릴케에게서 위안과 조언을 얻고 싶었을 젊은 시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는 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해설에서 말하고 있듯,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이나 인생의 고민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충고자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찌는 듯한 고뇌의 열탕 속에서도 참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처럼 시원한 기운을 선물해주는 책이라 믿는다.
내게는 아홉번 째 편지 내용이 유독 큰 위로가 되어주었는데, 그 내용을 옮겨본다.
갑작스레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차가운 날씨에 나는 또 가고자 했던, 가야만 하는 이정표를 잃어버린 듯하다.
대책없이 어물쩡대고 있으니 말이다.
그 . 냥 . 하 . 자 .
생 . 각 . 좀 . 줄 . 이 . 고 .
아홉 번 째 편지
친애하는 카푸스 씨,
며칠 동안 편지 한 통 쓰는 일 없이 보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행을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께 편지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편지를 쓰는 일이 힘겹게 느껴집니다. 벌써 여러 통의 편지를 써야 했거든요. 손이 몹시 피곤합니다. 나의 글을 받아써줄 사람이 있어서 구술할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얼마 되지 않는 말이라도 긴 편지로 생각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친애하는 카푸스 씨, 나는 내 편지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과 함께 자주 당신을 생각하곤 합니다. 나는 내 편지가 당신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너무 고맙게 생각지는 말고 그냥 받아주세요. 그리고 어떠한 결과가 생길지에 대해서는 우리 함께 기다려보기로 합시다.
이제 당신이 한 말들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타고난 회의懷疑적 기질이라든가 외적인 삶과 내적인 삶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당신의 무능력, 그 밖에 당신을 압박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예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것들뿐이니까요. 다시 말해서 다음과 같은 부탁입니다. 마음속에 늘 충분한 인내심을 지니십시오. 또한 소박한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어려운 것을 더욱더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고는 삶이 당신에게 벌어지는 대로 놔두십시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삶은 어떠한 경우에도 옳습니다.
그러면 감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모아주고 당신을 들어 올려주는 모든 감정들은 순수한 것입니다. 반면에 당신의 본질의 한쪽 면만을 붙잡아 당신의 모습을 일그러뜨리는 감정은 순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눈앞에 두고서 당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좋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당신의 가장 훌륭한 시간에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많은 것을 당신으로부터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좋은 것입니다. 모든 심적인 고양은 좋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피 전체에 퍼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도취나 혼탁함이 아니라 바닥이 맑게 내려다보이는 기쁨이라면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뜻을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잘 훈련만 시킨다면, 당신의 회의懷疑도 당신의 훌륭한 특질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회의는 탐구적이 되어야 하고 비판적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회의가 당신의 무언가를 파괴하려 들면, 그때마다 그 무언가가 도대체 왜 보기 싫은 건지 회의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회의게게 그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시고, 회의를 시험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아마도 회의가 할 말을 잃고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혹은 회의가 반항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굴복하지 말고, 논쟁을 끝까지 이끌어가십시오. 그리고 그때마다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철두철미하게 행동하세요. 그러면 회의가 파괴자에서 당신의 가장 훌륭한 일꾼 중의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마도 회의는 당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든 일꾼 중에서 가장 현명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내가 오늘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말은, 친애하는 카푸스 씨,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얼마 전 프라하에서 발행되는 잡지 ‘독일연구 Deutsche Arbeit’ 에 실린 나의 짧은 작품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 의 별쇄본을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지면을 빌려서 나는 당신께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웨덴의 푸루보리, 욘세레드에서
1904년 11월 4일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들어가는 말
1902년 늦가을이었다. 나는 빈의 노이슈타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정원의 늙은 밤나무들 아래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얼마나 책에 깊이 빠져 있었던지 우리 사관학교 교수진 중에서 유일한 민간인으로서 사관학교 내에서 학식 있고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호라체크 목사님이 내 곁에 와서 앉는 것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분은 내 손에서 책을 거두어 표지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인가?” 그는 의미심장한 투로 물었다. 그는 책을 이곳저곳 뒤적거리면서 여기저기 몇 줄씩 훑어보고 나서 생각에 잠긴 눈길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군사학교에 다녔던 르네 릴케가 결국 시인이 됐구먼.”
그리하여 나는, 그때로부터 약 15년 전 장교가 되기 위해 부모님에 의해 장크트 푀르텐 육군유년학교에 보내졌던 그 가냘프고 창백한 얼굴의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당시 호라체크 목사님은 그 군사유년학교의 교목 校牧 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은 예전에 자신의 제자였던 그 학생을 아직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그를 조용하고 진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소년으로 묘사했다. 생도 릴케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며 기숙사 생활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4년 동안이나 잘 참아낸 후 다른 생도들과 함께 메리쉬-바이스키르헨에 있는 육군고등실업학교로 진학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에 진학하고부터 그의 체질이 그 모든 긴장을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며, 그런 까닭에 그의 부모님은 그를 군사학교에서 자퇴시켜 고향 프라하에서 공부를 계속하도록 하였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이 어떠한 행로를 그렸는지, 호라체크 선생님은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었다.
바로 그 때 나는 내가 쓴 습작 시들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보내 그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호라체크 목사님으로부터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로서는 그것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당시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았던 나는 나의 타고난 소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의 문턱 쪽으로 자꾸만 다가가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어서 ‘나의 축제를 위하여 Mir zur Feier’ 를 쓴 그 시인에게 문의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나의 시들에 덧붙여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를 한 통 쓰게 되었다. 남에게 나의 마음을 그처럼 발가벗겨 보여준 것은 나로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몇 주가 지나서야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파란 소인 消印 이 찍힌 편지의 겉봉은 발신지가 파리 우체국임을 알려주었다. 편지를 손에 들자 묵직하게 느껴졌다. 편지 겉봉의 깔끔하고도 또렷한 아름다운 필체가 눈에 띄었다. 편짓글도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그와 똑같은 필체로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나와 릴케 사이에는 편지들이 규칙적으로 오갔다. 그런 식으로 1908년까지 이어지던 서신왕래는 점차 시들해지다가 이후로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시인이 행여 내가 빠져들까봐 따뜻하고 정성어린 마음으로 애써 만류하던 바로 그 영역 속으로 나의 삶이 마구 빠져들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소개하는 10통의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과 창작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무럭무럭 자라나 성숙해 가는 오늘과 내일의 많은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이 위대한 시인의 이야기를 우리의 젊은이들은 조용히 귀담아 들어야 하리라.
1929년 6월, 베를린에서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Franz Xaver Kappus 1883-1966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
1875년 체코 프라하 태생. 1926년 12월 자신을 찾아온 여인에게 장미꽃을 꺾어주려다 장미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스위스의 발몽에서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러시아, 아프리카, 스페인, 북구 등을 떠도는 끊임없는 방랑 속에서 살고 사랑하며 2천 편이 넘는 시와 단편소설, 희곡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폴 발레리, T. S. 엘리엇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시인의 반열에 서며 독일 현대시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깊은 고독을 전제로 한 인간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는 삶과 죽음의 합일에 대한 그의 희구와 더불어 그의 문학의 큰 테마를 형성한다. 예술가적 치열함을 가지고 삶을 일관하면서 기도시집, 형상시집, 신시집,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 뛰어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해설 -
인생의 계절에 따라 읽는 릴케의 편지
고독과 방랑 그리고 장미 또는 모순의 시인으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괴테 이후 독일어권 최고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875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협소한 프라하의 문학 현실을 뛰쳐나온 그는 유럽 곳곳과 러시아,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그곳의 자연 풍광과 문화적 유산들을 두루 소화하고 루 살로메, 톨스토이, 로댕, 발레리 등의 중요한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창작의 매시기마다 개성 있는 독특한 시세계를 만들어냈다. 감정이 주를 이룬 초기의 신낭만주의적, 예술지상주의적 세계관 ‘초기시집’과 ‘기도시집’ 그리고 그리고 ‘형상시집’, 중기의 실존의식 및 사물과 거리를 둔 객관적 자세 ‘말테의 수기’ , ‘신시집’ , 그리고 후기의 인간존재에 대한 포용적 자세 ‘두이노의 비가’ ,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으로 요약되는 그의 시적 발전은 평번한 수준에 머물렀던 그의 문학적 출발 상황에 비추어 모든 사람의 경탄을 자아내는 것이었으며 독일 현대시의 표현 가능성을 한 단계 승화,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게 만들었다. 평생을 모름지기 순수한 시인의 자리를 지키려는 열망에 끌리어 삶과 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숱한 모순의 삶을 살다간 그는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그리도 많은 눈까풀 아래 /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라는 역시 모순투성이의 모호한 ‘묘비명’ 을 남기고 1926년 겨울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난 자리에서 우리는 2천 편이 넘는 시작품과 많은 수의 산문 작품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는 유럽 서간문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정도로 시 · 산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편지를 우리에게 남겨놓았다. 릴케의 편지는 지금까지 약 7천통이 책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릴케는 작업을 향해 무한대로 열려 있는 저녁 및 밤 시간과 달리 하루 중의 오전 시간을 편지 쓰는 시간으로 잡아 평생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쓰면서 살았다. 새벽 두세 시까지 창작을 위한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아침 열 시쯤 일어나면 그는 산책에 앞서 먼저 차를 한 잔 끓여 마시고 여러 지인들에게서 온 편지에 대해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이와 같은 편지 쓰기는 무엇을 의미했는가?
리자 하이제라는 여류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릴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편지를 아직도 인간들 사이의 가장 멋지고 풍요로운 교제 수단으로 생각하는 구시대풍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경우 편지쓰기는 단순한 교제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편지쓰기는 그에게 그 자신의 사고의 편린들을 상대방에게 토로하는 마당이 되어 주었다. 특히 편지라는 표현 수단은 외적 발산과 행동보다는 내면성에 경도된 그의 소질 및 세계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독한 한 개인인 그에게 인간적인 소통을 가능케 해주었으며 시적 창조가 침묵과 고갈의 궁지에 빠졌을 때 창작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연습의 장이 되어 주었다. 그런 까닭에 작품을 쓰지 못할수록 그는 편지 쓰는 일에 매달리곤 하였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만 5년 동안 릴케에게 인생과 문학과 관련하여 자신의 고민을 물어 온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1883-1966)라는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통의 편지로서 릴케가 세상을 뜬 뒤인 1929년에 카푸스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당시 프란츠 카푸스는 릴케의 청년기처럼 사관학교 생도이면서도 기질상 그것이 맞지 않아 문학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 젊은이였다. 젊은 카푸스의 예술을 향한 열망과 현실적 삶 사이의 방랑의 과정은 그로 하여금 젊은 시절 자신과 비슷한 삶의 역정을 걸었다고 생각된 릴케에게서 위안과 조언을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릴케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내가 당신한테 또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같은 것입니다. 당신을 이렇게 위려하려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처져 있씁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위의 글은 릴케의 문학이 지니는 위안적인 측면을 말해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비단 카푸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릴케의 작품에서 감명과 위안을 받고 그에게 서신으로 충고를 구해 왔다. 그러나 릴케는 번민에 빠진 모든 이에게 애정 어린 위안과 답을 주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는 무대로 만들었다. 그런 까닭에 불과 10통밖에 되지 않지만 젊은 카푸스에게 보낸 이 서한집에서도 우리는 릴케의 문학과 인생의 기본 특성들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릴케는 사랑과 성, 고독, 죽음, 예술 그리고 나아가서 인간의 존재 이유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젊은 시인의 물음에 대해 자기 나름의 생각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티프들은 그의 문학에서 이미 다루어졌거나 아니면 이후에 지속적으로 그의 관심의 세례를 받은 것들이다. 그와 같은 테마들은 사실 당시의 릴케가 이미 성취한 것이라기보다는 외적인 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스스로 되뇌어 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편지를 처음 썼을 때의 릴케의 나이는 28살이었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빠질 수 있는 고민의 세계를 릴케는 그만의 고유한 사고방식의 개진을 통해 보여준다. 그 해결책의 제시는 무엇보다 깊은 고독에의 침잠을 통하여 피상적인 외부세계로부터 눈을 돌려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응시하고 거기서 참된 것을 찾아내라는 권유로 그 첫머리를 장식한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것은 쉬운 것 혹은 가벼운 것에 매달리지 않고 어려운 것 혹은 무거운 것을 향하는 데 있으며 이것은 고독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제시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어려운 것, 진지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사랑에 있어서는 소유를 배제한 “소유하지 않는 사랑” 의 개념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여성을, 남성을 위한 하나의 보충물로 보는 사회적 인습을 파괴하려는 그의 여성해방의식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는 모든 외적인 방해물들로부터 자신의 예술세계를 방어하려는 독특한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두 연인이 서로가 서로의 고독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의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입니다.” 그 결과 릴케가 내세우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개념” 은 고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나아가서 고독과 거의 동의어가 된다. 또한 고독을 강조하는 그의 생각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식이 숨어있다. 당시 여성이 사회적으로 당했던 차별에 미루어 그의 사고가 사뭇 진보적임을 알 수 있다.
성 性 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릴케는 성에서 유희적 성격을 배격하고 진지성과 필연성 그리고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욕구는 순수하게 그 본래의 본질에 걸맞게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모든 것을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편의대로 변형, 왜곡시켜온 것에 대한 이러한 반감은 ‘말테의 수기’ 에서도 분명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물을 비롯한 모든 것의 자체 목적성에 대한 존중은 릴케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초기의 ‘기도시집’ 에서도 릴케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들이 다가가는 사물들이 모두 문을 닫아버릴 때도,
그들의 나의 것이라 하며 소유를 말합니다,
마치 바보 같은 사기꾼이
태양이나 번개를 제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인생, 나의 아내,
나의 개, 나의 아이라고. 하지만
인생, 아내, 개 그리고 아이의 이 모든 것이
맹인처럼 손으로 더듬어 볼 뿐인
낯선 형상들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릴케의 예술가적 태도는 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짙게 배어 있다. 즉 그는 신을 기독교적 전지전능의 신으로 바라보지 않고 미래에 생겨날,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언젠가 궁극적으로 현시될 존재로 표현한다. 같은 시기에 쓰인 ‘기도시집’ 의 시가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당신을 짓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 쌓아 올립니다.
하지만 그 누가 당신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그대 성당 聖堂 이여.
앞으로 다가올 신의 표상은 릴케가 즐겨 제시하는 사고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표출하기 위해 시인은 기독교 신앙의 상징, 즉 신을 향해 노력하는 경건성의 가시적인 징표인 성당건축을 사용한다. “신을 짓는다” 는 것은 곧 시적 자아가 신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릴케의 주장은 기존의 신의 존재를 통한 모든 것의 기성사실화로부터 모든 것을 미래에 생겨날 것으로 가정함으로써 사고 세계의 확장을 가져온다. 그러한 확장은 결국 예술가 자신의 내면 공간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면 공간의 확장은 그만큼의 창조의 자유 내지 여지를 보장해준다. 이러한 확장의 개념은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도 적용된다. 즉 우리에게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것, 삶에 대척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삶 안으로 적극적으로 포용함으로써 우리의 삶 자체가 그만큼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들이 겁쟁이였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크나큰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즉 “환각” 이라고 불리는 경험들, 이른바 모든 “유령의 세계” , 죽음 등 원래 우리와 가까웠던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매일같이 뿌리침으로써 우리의 삶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것들을 감지할 수 있는 우리의 감각이 퇴화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신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현존재를 되도록 폭넓게 생각하여 그 속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이러한 통합적 세계관은 나중에 그의 대작 ‘두이노의 비가’ 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에서 그 구체적 실현을 보게된다.
이처럼 이 10통의 편지에서 우리는 인습적 사고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제도권을 떠나 국외자로서 진정한 진리를 찾아 자신의 삶을 마치 수도사처럼 추구해간, 혹은 추구하려 한 시인의 각고의 인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이 같은 그의 자세는 젊은이들이 품게 되는 삶의 모든 고민들을 푸 수 있는 하나의 보편화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릴케의 편지글은 그 자신의 숱한 고민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한 그루의 푸른 소나무처럼 언제나 젊고 창조적이고 인생에 대해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얼핏 철학적인 성격을 띤, 인생과 문학에 대한 그의 해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모두 개인적 취향의 문제라고 본다. 다만, 옮긴이는 이 글을 통해서 가벼운 것에서 가벼운 것 쪽으로만 접근해가는 현대적 일상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경외심과 무게 중심을 가지고서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잠시 진지한 성찰을 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그러한 성찰이 또 하나의 훌륭한 시인을 낳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미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되어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이나 인생의 고민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충고자의 역할을 하면서 매년 판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인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한 릴케의 마음의 소리는 늙고 젊음을 떠나 인생의 매 계절마다 우리에게 찌는 듯한 고뇌의 열탕 속에서도 참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처럼 시원한 기운을 선사해주리라 믿는다.
릴케와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편지를 주고 받은, “젊은 시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는 1차 세계대전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통속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소설 ‘불타는 그림자’ 와 ‘예술가의 아내’ 는 독일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다른 유명 작가와 공동으로 펴낸 작품집에도 그의 단편이 실릴 정도로 생전에는 나름대로 문명을 떨쳤지만, 릴케와 달리 문학적 수명이 그리 길지는 못했다. 릴케의 조언을 그대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우리말로 옮기는 데 사용한 텍스트는 Rainer Maria Rilke,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Insel-Bucherei Nr. 406, Wiesbaden 1956이다.
- 2006년 6월,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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